한 달 전쯤 쓴 선악의 이분법에 관한 글이다. 최근에 학교로부터 전학 권고를 받아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고, 여러 일을 겪으며 학내투쟁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정리했다. 내 안의 모순을 지적하는 예전의 글을 읽고 필요한 부분은 조금 보충하여 인제야 글을 완성해 보았다.

 


선악의 이분법


난 선악의 이분법이 싫다. 선악의 이분법이 정상 원리로 작동하는 공간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그 예로는 한국의 의회정치(또는 정당정치)를 들 수 있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이 속한 세력과 이념의 반대에 있는 이들을 모두 으로 규정하고, 투쟁과 대립의 상대로 바라본다. 서로의 공존과 협력이 필요한데도 서로를 싸워야 할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으니, 효율성이나 진전, 진보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공간이 우리 사회에 많아지면, 사회는 대립으로만 가득 차 끊임없이 비효율적이며 진전없는 모습을 띠게 된다. 이에 대한 민주 사회의 올바른 해결책이자 대안은 대화와 타협, 그리고 토론이라는 가치다.

 

선악의 이분법을 혐오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의 모습은 되돌아보지 못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목적으로 존중하는 것은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다. 이런 존중을 배제하고선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의 나는 지나치게 사회의 갈등관계에만 집착하여 학교를 투쟁대상으로만 바라보았다. 물론 학교-학생의 억압과 통제 이데올로기를 생각했을 때, 이러한 시선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의 치명적인 실수는 학교로 대표되는 잘못된 교육과 내가 다니는 학교의 교사를 같게 여겼고, 교사를 투쟁대상이라는 틀에 가두고 대했다는 점이다. 교사는 억압 이데올로기에 매몰된 한 개인이며, 개인은 결코 투쟁이나 청산의 대상이 아니다. 억압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주체인 기득권이자 기성세대 억압자이더라도, 그 책임은 체제와 제도에 물어야 하지 개인에게 물을 것은 아니다. 난 교사 집단을 억압의 주체이자 싸워야 할 상대로 상정했고, 그 결과,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싸우려 드는 한 학생에 대한 회의적인 여론만을 만들었다. 이 여론의 주체는 어른과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었다.

 

난 이런 여론의 원인을 억압 이데올로기에 갇혀버린 학생들에서 찾았고, 그렇게 나의 투쟁방식과 행동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에 대한 학생여론의 회의, 혐오 반감은 국민이 한국 정당정치에 가지는 정치 혐오감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는 진전과 효율 없는 대립이 가져온 결과이다.

 

청소년 운동의 투쟁은(=나의 투쟁은) 대화와 타협, 협력, 토론이 있을 때 비로소 성과와 진전을 만든다. , 교육 주체로 학생을 상정함에 따라, 나의 주장이 학생 대중의 여론을 등에 업어야지만 투쟁을 민주적으로 성공시킬 수 있다. 지난 2주간의 선악의 이분법과 지배-피지배의 이분법을 바탕으로 한 투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난 선악의 이분법을 혐오하면서, 선악의 이분법을 생산했다. 성공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다시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학교를 타협과 설득, 토론의 장으로 만들자. 내 생각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여론을 등에 업자. 여기에서 여론은 학생 여론과 교사 여론을 모두 포함해야 한다. 내 생각이 교육 주체 여론의 대표성을 띔을 증명할 수 있을 때 교육 체제나 학교와 같은 억압 주체와의 협상과 토론이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교사 여론도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필요하다. 교사 또한 억압 이데올로기에 속해 있는 한 개인이자 교육 주체로서, 그들의 여론은 교육체제와 학교의 변화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학교의 관리자와 교육계 내외의 관료 여론도 함께 해야 하며, 지역사회의 일원과 시민사회 일원의 여론도 함께 해야 한다.

 

변화는 교육 주체 모두가 함께 만들어 나간다. 이들 교육주체를 지배와 피지배 관계에 따라 선악으로 분류하지 말자. 맘속 깊이에 자리 잡은 선악의 이분법을 깨뜨리자. 타협과 대화, 목적으로서의 존중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몸에 새기자. 교육 주체 모두와 동등한 위치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샘솟는 학교를 만드는 과정을 아름답게 그려나가자. 교육주체 모두의 타협과 대화, 그리고 협력 속에서 성공적인 투쟁의 역사를 쓰자. 우리 모두의 투쟁을 위해, 내 생각이 객관과 정답이 아님을 머릿속에 다시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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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의자 청소년의 글과 꿈.

'교육공동체 벗'에서 만드는 교육 격월간 잡지 <오늘의 교육>에 '촛불 광장으로 부터 얻은 청소년 개인의 정치적 각성' 을 주제로 글을 한 편 써냈다. 



박태영

청소년바보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 회원

typark99@naver.com

 

경남 고성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청소년입니다.

청소년운동을 막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청소년 인권과 교육, 그리고 사회의 차별적 구조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나의 광장

박태영

 


나는 정치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신문이나 뉴스를 꾸준히 보지는 않았고, 가끔 이슈가 되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수준이었다. SNS에 올라오는 기사를 가끔 곱씹고, 정치인들은 다 똑같은 놈들이라며 현실 정치에 대한 막연한 혐오를 지녔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떠올릴 때는 나 자신이 조금은 좌파적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했다. 이 정도만 해도 내 주위에 있는 다른 청소년들에 비해 정치에 관심이 많은 놈이었다. 난 그 정도에 만족하며 살았다.


하지만 박근혜의 국정농단은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대한민국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플라톤의 말이 그대로 드러난 현장이었다. 정치에 적당히 발 담그고 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방관이 이런 저질스러운 사태를 만든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광장에 나섰다.

 


3’아닌 시민

 

나의 첫 광장은 지난해 115, 경남 진주의 로데오거리였다. 날씨가 쌀쌀해지던 무렵 맨투맨 셔츠 한 장만 입은 가벼운 옷차림으로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나갔다. 오후 4, ‘박근혜 퇴진 진주 비상시국회의사람들이 집회를 막 준비하고 있었고, 난 어색하게 앞에서 다섯째 줄에 앉았다. 주변에 서 있는 시민들이 나와 친구들을 쳐다보는 듯했다. 특히 내 또래 친구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어색한 첫 광장에서 괜히 남의 시선만 의식했다. 처음 앉아 본 광장은 사이즈도 안 맞고 옷감도 너무 뻣뻣한, 그런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날이 저무니 사람들의 시선이 덜 느껴졌다. 박근혜 퇴진 구호와 노래가 덜 어색해졌다. 행진을 시작했다. 1차선을 따라 끝없이 늘어선 촛불에 가슴 벅찼다. 진주라는 소도시에서 방송차를 2대나 썼으니 참가 인원이 꽤 많았던 날이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춥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색한 기분은 사라지고, 군중과 하나 되어 박근혜 퇴진구호를 맘껏 내질렀다. 당황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할머니들과 가던 길을 멈추고 행진 대열을 구경하는 시민들. 나는 내 또래 시민들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첫 광장은 내가 국민이 되는 뿌듯하고 뜨거운 경험이었다.


작년 1112일에 서울에서 있었던 민중 총궐기는 참여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이 커서 유튜브 방송으로 총궐기에 함께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인 1119, 서울로 갔다. 12시에 행진이 마무리되고 해산할 때까지 광화문에 있었다. 아는 사람도 없는 광화문이라 그런지 눈치도 보지 않았다. 자유 발언도 해 보고, 시위대의 가장 앞에서 집회를 함께했다. 첫 서울 집회에서 최대한 많은 걸 경험하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행진할 때는 정말 목이 찢어져라 구호를 선창했다. 많은 사람이 내 구호에 맞춰 후창했다. 내겐 아빠뻘 되는 나이의 시민들과 내 바로 옆에서 함께 걸어가던 할아버지까지 말이다. 기분이 묘했다.


12, 1월이 되고, 날이 더 추워지자 잠시 촛불을 드는 일을 멈췄다. 여러 사정이 있었다지만 핑계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올 2월 초, 볼 일이 있어 로데오 거리에 갔다가 지금까지 집회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11월의 촛불보다 훨씬 적은 수였다. 내가 촛불을 잠시 잊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촛불을 들었다.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시민의 무관심이라는 점을 다시 되새겼다. 2월 한 달 동안 빠짐없이 집회에 나갔다. 지난 225일에는 민중 총궐기를 맞아 오랜만에 서울에 다녀왔다.


광장은 아직 조금 어색하지만, 그 속에선 내가 시민이며 국민이며 나라의 주인임을 어렴풋이 느낀다. 더 큰 것은, 진정한 나의 나 됨을 느낀다는 것이다. 촛불 속의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대한민국 고3도 아니며, 내신 성적보다 모의고사 성적이 훨씬 나은 정시(수능)파 학생도 아니다. 난 그저 광장에 나온 시민 중 한 사람이다.

 


분노에서 성찰로

 

내 촛불은 분노로 시작했다. 박근혜와 최순실이라는,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분노였다. 대부분의 청소년들도 비슷한 종류의 본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 분노는 내가 대학을 가기 위해 힘든 공부를 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었냐는 물음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나라가 이 꼴이 될 때까지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냐는 분노와, 개인에게 희망을 빼앗기만 하는 이런 나라가 말이 되느냐는 분노였다. 나는 도대체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는 억울한 물음을 쏟아 냈다.


그러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니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왔다. 내가 수많은 행복을 유예해 가며 목매 온 입시와 고등학교 생활이, 더러운 기득권에 편승하려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청소년이 그토록 바라는 그런 대학을 졸업하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귓등이 따갑도록 듣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을 몸소 이룬 사람들의 세상은, 너무나 추악하고 더러웠다.


입시로 시작되는 한국형 권력 다툼의 종착역은 참담했다. 우리 사회가 얄팍한 권력과 돈에 목숨 걸며 기득권의 행태를 답습하는 인간으로 가득 찬 듯 느껴졌다. 그리고 그 권력 다툼의 시작 지점인 입시에 목매 온 나도 그런 인간으로 느껴졌다. 출세에 대한 내면의 욕망을 미처 지우지 못한 나 자신의 모순성은 끔찍했다. 그게 무엇보다 화가 나고 미웠다. 내가 한명의 인간이 아니라, 입시 기계와 공부 기계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출세주의 속에 갇혀 나 자신과 내 인생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 회의와 성찰 끝에 오는 물음은 꽤 본질적인 것이었다. 나는 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난 촛불 광장에서 소중한 고민을 시작했다.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다. 아직 정답은 모른다. 희미하게도 모른다. 다만 내 안에는 확실한 명제가 하나 생겼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이런 다짐은 촛불이 내게 가져다 준 결론이 아니라 더 큰 고민과 생각의 시작점이다. 그리고 내 생각과 목펴를 명확히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대학에 가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을 하나하나 하고 있다. 1년 뒤로 유예했던 나의 주체성을 되찾았다.


어떻게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것인가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느냐는 고민을 시작했다. 구체적인 결론은 없지만 이런 고민 하나하나가 진정한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에 집중하고 충실할 수 있게 됐다. 미래의 출세와 부와 명예를 위해 내 현재를 희생하지 않게 되었다. 더는 입시의 감옥에 나 자신을 가두지 않아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지금 입시 공부를 안 하고 이걸 해도 될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된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꿈꾸는 삶을 위해 노력한다. 촛불 광장은 출세에 대한 내면의 욕구와 강박에서 날 해방시켰다.


출세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자, 입시가 아닌 다양한 곳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다양성과 소수자에 관한 것이었다. 난 광장에서 다양성을 배웠다. 나의 권리와 자유만큼이나 다른 이들의 권리와 자유도 소중하며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를 배웠다. 광장에 나가기 전에는 늘 글로만, 머릿속으로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광장에서 내가 겪어야 하는 청소년 혐오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다른 소수자들이 겪는 혐오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글과 생각에 그쳤던 그동안의 고민을 광장에 나간 후에 어떻게 내 행동이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으로 바꾸었다.


되돌아보니 시민으로, 한 인간으로 존중받으려 노력하면서도 내가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고 존중하지 않은 적이 너무나 많았다. 수많은 부끄러운 과거가 떠올랐다. 내 일상은 차별과 혐오와 배제로 가득 차 있었고, 언어생활조차 병신과 같은 혐오 표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면서 소수자 혐오를 반대한답시고 페미니즘 책도 읽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져온 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은 그저 날 꾸미는 치장이며 헛된 공부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언행 불일치와 내 안의 모순점을 하나하나 고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다시 배웠다. 촛불이 없었더라면 난 나의 보편성과 평범성 안에서 수많은 이들을 배제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미완성이다

 

광장과 광장의 사람들은 날 굉장히 부끄럽게 했다. 그들 앞에서 내 그동안의 무지와 잘못과 모순성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지난 시간 동안 세월호 참사에 무관심했기에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셀 수조차 없이 소수자 혐오를 해 왔기에 혐오 표현에 반대한다고 외칠 수 없었다. 내 부끄러운 역사를 묻어 둔다면 나 역시 광장에서 당당할 수 없다. 오래 전의 이야기도 아니고 불과 몇 달 전의 부끄러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난 내 잘못을 하나하나 꺼내 놓고 반성하고 되새겼다. 그렇게 광장의 일부과 되어 갔다.


광장은 내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 주었다. 내 안의 모순성을 끄집어내는가 하면, 앞으로 내 삶의 본질을 묻기도 했다. 부끄러움과 반성의 기회도 줬다. 광장은 내 인생을 크게 바꿔놓았다. 끔찍한 세상을 바꿔 보겠다고 나선 광장에서 마주친 건 끔찍한 내 모습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하나하나 인정했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은, 내 안의 모순을 저지르지 않는 삶이다. 내 안의 모순을 끊임없이 분해하고 감시하면서 내가 먼저 변화하는 삶이다. 이게 광장으로부터 내가 얻은 정치적 각성이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그 안의 모순점을 찾을 때 세상을 모순을 바라보는 안목도 생긴다. 이제 나는 내가 미완성의 인간이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해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 이 앎이 광장이 내게 가져다준 가장 가치 있는 것이다. 광장은 날 정신적으로 한층 성숙하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광장이 던져 준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난 많이 변화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여전히 나는 미완성이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그리고 주어질 수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과 결론은 마찬가지로 광장에서 찾아야 한다. 그게 내가 광장에 나갔고, 앞으로도 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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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진주촛불에 나가서 자유발언을 했다.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시민들에게 조금 알리고 싶어서 청소년 참정권은 기본권이다는 내용을 바탕으로 발언했다. (유튜브 발언 동영상)


그날 집회에서 김해을 김경수 의원이 나보다 앞서서 발언했는데, 그 중 "국민이 더 똑똑해져야 한다", "다음 총선엔 더 현명한 판단 부탁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난 국회의원이 광장에 나와서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지지를 호소하는 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발언 중에 김경수 의원을 발언을 비판했다. 김경수 의원이 참정권이 기본권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지 못하는듯하여(발언 전 참정권에 대해 잠시 대화를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발언 때문에 한 팟캐스트와 인터뷰를 했고, 필통이라는 진주 청소년 신문에 기고를 부탁받기도 했다. 진주필통에 기고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날 청소년이라는 이유(어리다는 이유)로 반말로 대하고, 내 문자를 답하지 않는 일도 생겼지만 그래도 진주의 중고등학교에 배부되는 신문이고, 내 주장과 내가 속한 단체를 알릴 기회라는 이점이 있었기에 그냥 넘겼다. 날 시민이며 글쟁이가 아닌 '어린 학생' 정도로 대하는 태도가 기분 나빴지만 말이다. 아래는 진주필통에 기고한 글이다.


진주필통 기고 본문 캡처


최근 청소년 참정권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진보 성향의 야당이 ‘18세 선거권’의 필요성을 부르짖는가 하면, 그 어느 때보다 청소년의 정치참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크게 퍼지고 있기도 하다. 최근 진주에도 새로운 청소년운동단체가 생겼고, 그 단체의 페이스북 페이지 글에도 댓글로 여러 청소년과 비청소년의 열띤 ‘참정권 논쟁’이 벌어졌다. 그 댓글을 읽다 청소년 참정권 보장에 대한 많은 청소년의 입장이 꽤 미적지근하고 회의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청소년 참정권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은 ‘청소년은 미성숙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데 근거를 둔다. 하지만 인간의 성숙은 개인의 경험과 성찰로 결정되는 것이지 나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민법의 기준인 ‘만 19세’를 전후로 인간의 미성숙과 성숙을 결정짓는 것은 더욱 잘못이다. 한발 양보하여 청소년 집단이 비청소년 집단보다 미성숙하여 올바른 선택을 할 확률이 낮다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청소년 집단의 ‘상대적 미성숙’은 청소년 참정권 반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간단한 예를 생각해 보자. 인간은 노화가 진행되며 뇌 기능도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어느 국가도 노화를 근거로 개인의 참정권을 제한하지 않는다. 아직 훨씬 개선이 필요한 제도이지만, 지적장애인에게도 거소투표(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와 같은 여러 보완책이 하여금 동등한 투표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을 기하고 있기도 하다. 선거제도의 바탕에는 참정권이 국민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가져야 할 기본권이자 자연권이라는 원칙이 깔려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개인의 정치적 자유와 참정의 권리를 성숙과 미성숙의 잣대를 들어 제한할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어떤 이들은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자에게 권리를 줄 수 없다며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한다. 하지만 청소년은 국방의 의무(병역의 의무는 특정 연령대의 법적 남성만이 가진다)와 부가가치세를 통한 납세의 의무 등을 다하고 있다. 게다가 참정권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는 행복추구권으로 보장되므로, 의무에 앞서는 기본권이자 자연권이다. 행복추구권 중 일부인 신체의 자유, 정신의 자유, 경제적 자유가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보장되듯이, 참정권도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선거권과 정당가입권은 대의민주주의(간접민주주의)의 제도로서, 민주 국가라면 마땅히 모든 국민에게 보장해야 한다. 이런 기본권은 의무에 앞서며, 나이를 가리지도 않는다.

 

OECD 국가의 선거연령이 대부분 18세라는 점과 18세가 지니는 여러 의무와 권리(병역의 의무, 공무원 시험 응시 가능, 결혼 가능)는 청소년 참정권 보장의 근거로 썩 올바르지 않다. 이런 근거는 참정권이 17세와 16세를 포함한 모든 청소년에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라는 ‘본질적인 근거’의 논점을 흐리고, 참정권 논의의 대상을 ‘18세’에만 한정하는 결과를 만든다. 참정권은 민주주의와 선거를 학습한 모든 청소년에게 보장되어야 한다.

 

청소년 참정권 논의에는 ‘기본권으로 보장해야 할 권리’라는 본질적 근거가 생략된 경우가 많다. 청소년 참정권 반대 의견의 대부분은 이 근거만으로도 쉽게 반박할 수 있다. 슬프게도 정당 정치인과 국회의원조차 이런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정당이 18세 선거권 필요의 이유로 ‘만 18세 선거권이 세계적 추세’를 택하고 있다. 참정권에 대한 그릇된 인식으로 가득 차있고, 보수 세력의 정치적 이익계산과 ‘교실=무(無)정치한 공간’이라는 고정관념 속에서 기본권인 ‘청소년 참정권’이 희생되는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유일한 해결책은 더 많은 청소년의 참여다. 청소년이 스스로 미성숙한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고, 기본권인 참정권을 찾아와야 한다. 청소년을 정치적 주체로 여길 때 더 많은 청소년의 권리와 복지가 보장되며, 청소년을 위한 정치가 시작된다. 18세 선거권은 청소년 참정권을 위한 시작이며, 청소년 참정권은 우리의 행복추구를 위한 시작이다. 우리의 참정권 논쟁이 ‘잠시 핫한 이슈’나 ‘정치적 계산의 대상’에 그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다. 청소년이여! 우리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함께 외치자! 우리의 목소리가 정치에 닿도록 더 크게 소리치자!


[글쓴이 박태영]

글쓴이는 <청소년 바보회>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활동가입니다. 우리 사회에 대해 글을 쓰는 글쟁이이기도 합니다. 뜻을 함께해 주실 청소년은 페이스북 <청소년바보회>페이지 또는 카카오톡 (박태영 ID : hexaframe)으로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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